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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Q/쿠로른

<보쿠로> Don't you worry, my darling 1.1



1장 -1


“그래서, 그 귀한 부엉이 장군님이 이 누추한 곳까지 어인 일이실까.”


기다란 주홍빛 소파에 비스듬히 누워 사방으로 여자를 끼고 느긋하게 드러누운 자세가 퍽 고혹적이었다. 주욱 늘어진 두 눈꼬리는 또 어찌나 쌔끈하던지. 그 밑으로 이어진 날이 선 콧날과 얇지만 매혹적인 입술까지, 손안을 적신 땀이 뚝 뚝 바닥으로 떨어질 지경이었다. 주위의 헐벗은 것과 다름없는 여자들이 커다란 부채를 펄럭이며 꿀 흐르는 듯한 피부와 자태를 뽐내는 것이 눈에 찰 턱이 없다. 오히려 그녀들은 애써 저들 가운데 있는 쿠로오 테츠로의 존재감을 억누르는, 혹은 그에게로 향하는 시선을 분산시키는 정도로 뿐이 보이지 않았다. 물론 그마저도 씨알도 안 먹혔지만.

유연하게 휜 허리, 몸의 라인을 과도하게 드러나는 얇은 천, 전혀 의도적이지 않은 야살스럽게 흐트러진 옷매무새로 열린 검붉은 기모노의 앞섬은 유한 가슴팍을 아슬아슬하게 내놓았고, 불그스름한 조명에 비친 살갗은 농익은 열매처럼 과즙을 뚝뚝 흘렸더란다. 이를 하나하나 빠짐없이 쫓으며 뾰족한 제 입꼬리를 말아 올린 보쿠토 코타로는 황금알을 박은 듯한 두 눈을 번뜩였다.


“일천이백 금괴, 그리고 팔백 나르를 더하지.”
“단위가 커서 듣기도 전에 사양하고 싶어지는걸.”


위풍당당한 보쿠토의 거래금에 쿠로오는 웃음을 흘리며 농으로 답했다. 그러나 서서히 뉘었던 몸을 일으키는 것 하며 슬쩍 주변을 물리는 게 확실히 건수는 제가 물겠다는 태도였다. 꽤 지갑이 가벼워지겠지만, 그에 대한 충분한 가치를 보쿠토는 이미 두 눈에 똑똑히 세긴 듯했다.


“그래서, 원하는 건?”


쿠로오의 입술이 느릿하고 유연하게 들썩이며 조건을 물어왔다. 마치 인간의 꼬임에 한발 물러서 넘어가게 주겠다는 관능적인 악마의 모습 같았다. 보쿠토는 그 모습에 찬찬히 입맛을 다셨다. 자칫 입 밖으로 삐져나가 입술을 핥을 뻔한 경솔한 혓바닥을 묶어두기 위해 어찌나 등꼴을 빳빳이 세워야 했던지.

그는 마음을 가다듬곤 눈을 한 번 크게 감았다 떴다.


“지하세계의 수문장, 그리고 지상을 쥐어 잡는 무역상인 쿠로오 테츠로. 내 처가 되라.”


-


윗세계나 아랫세계나 며칠째 떠들썩함이 잦아들지 못했다. 얼마 전 정의대장군이 쥐도 새도 모르게 진행했다는 프러포즈가 대화의 가장 큰 주 대목이었고, 그다음은 그것을 냉철하게 거절했다는 지하도시의 수문장이었다. 이 나라의 정상에 선 쇼군의 청혼을 거절한 것으로도 모자라 아직도 숨통이 붙어있다는 게, 혹시 쇼군보다 더한 권력을 지닌, 혹 옆 대국의 왕손이 아니냐는 둥, 이미 죽었는데 아무도 모르고 있는 게 아니냐는 둥, 이러저러 설이 돌았지만, 진실은 본인들만이 알고 있을 터였다.


"장군님. 거리에서 장군님 이야기가 끊이지가 않네요."
"아카-아시, 그런거 일일이 말 안 해줘도 되니까!"


어제의 그 위풍당당하고 권위에 넘치던 모습은 어디 가고, 덜자란 티를 팍팍 내며 새초롬하게 삐져선 침대에서 이불까지 뒤집어쓰곤 한 발짝을 움직이지 않는 제 주군에 아카아시는 크게 한숨을 토해냈다. 거절당할 것이라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그 후의 후유증의 정도가 이렇게 터무니 없을 줄도, 이리 길게 지속될 줄도 몰랐다. 그 주군이라는 자가 며칠째 나라 돌아가는 일에는 눈길도 한 번 안 돌리곤 주야장천 천장만 바라보며 시위 중이니 여러모로 아카아시만 고생이었다. 빌어먹을 암고양이가. 아카아시는 속으로 이 상황의 원인을 씹었다.


"온 나라에 망신살 털리신 거 아시죠, 장군님."


쇼군을 대한다고 하기엔 사뭇 격식 없는 어조였으나 그것이 가능한 이유는 오롯 말하고 있는 사람이 아카아시 케이지였기 때문이었다. 어려서부터 왕가를 모시는 관료 집안의 장손으로서 차기 쇼군이었던 보쿠토와 나잇대도 비슷해 거의 친우처럼, 혹 형제까지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게 자란 것이 두 사람이었다.


"아카아시, 차가워. 장군님은 지금 따듯한 포옹이 있어도 부족할 판이라고!"
"그런건 쿠로오 수문장님에게서나 바라..."


그런 친근감 때문인지 무의식중에 평소와 같이 그를 비꼬며 훈계하려던 아카아시는 아차 하며 본인의 심각하고 어리석은 실수에 그대로 입을 굳혔다.


"......"


입에 담아서는 안 될 금지어를 말해버린 아카아시는 그나마 진전을 보인듯한 보쿠토의 상태가 도루묵으로 초-풀죽음 모드로 들어가자 이마를 짚으며 그 어느 때보다 큰 한숨을 내뱉었다. 그의 반은 제게로 향하는 탄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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